우리가 겪는 '아픔'에도 사회적 우선순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때다. 최근 네이버 뉴스를 통해 공개된 정보들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 암 연구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어떤 종류의 질병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로 인정받는지가 결정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에 의해 조용히 바뀌어 왔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여성의 몸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아픔이 저평가되어 왔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의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정하며 살아간다. 9월 17일자 오늘의 운세 기사에서는 업무에서 여러 일이 동시에 들어올 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날짜의 다른 운세 기사에서도 '판단력이 뛰어나고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줄 알아 인간관계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아픔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정작 사회적으로는 특정 아픔에 대한 연구나 지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9월 15일자 운세 기사 역시 계획을 다시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워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도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도 어떤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자원을 투입할지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죽음학 교육 관련 기사에서는 '삶의 우선순위'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가수 양희은의 노랫말을 인용해 '슬픔이 슬픔을, 아픔이 아픔을, 눈물이 눈물을 안아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공감이 사회 전체의 건강 불평등 해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우선순위 재정립이 필수적이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과 케어의 윤리에 대한 논의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료 시스템에 도달하기 전, 즉 사회 환경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입소자들이 '여긴 집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개인의 우선순위가 존중되는 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처럼, 사회 역시 개인의 다양한 아픔과 필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픔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면, 그 우선순위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여성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 부족은 우리가 간과해 온 사회적 아픔의 단면이며, 이는 곧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